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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7월호퀘렌시아! 종강에 마침표, 바다에 '쉼'표





한 학기를 보냈다.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허덕이기 
바빴다. 호기롭게  ‘아키텐’ 이라는 큰 동아리의 운영진을 맡았지만, 각종 
대외활동과 학기를 병행 하기란 생각보다 꽤 버거운 일이었다.

네 달을 바쁘게 달려 오면서 지치는 순간도 있었고, 또 작은 원동력이 
큰 힘이 되어 다시 나아가던 시기도 있었다. 이래저래 바빴던 일들이 많아 
돌이켜보면 스스로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던 것 같다.


학기가 끝나면 꼭 여행을 가야하는 고집이 있다.
제작년엔 오사카, 작년에는 홍콩.
혼자서 다녀올 때도, 친구들과 다녀올 때도 있었지만 
그 의미는 늘 같았다. 고생한 나에게 주는 휴가였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서 온전히 쉬게 될 때 비로소 ‘마무리했다’는 생각이 든달까. 
휴식 속에서 건축적 영감을 얻는 것도 나름의 묘미다.

그동안 완벽한 휴가를 보내기 위해 늘 미리미리 준비 했지만, 
이번엔 조금 특별했다. 새벽 4시에 덜컥 당일 기차 티켓을 예매해버렸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었다.




어릴 때 부터 뻥 뚫린 바다가 좋았고, 파도치는 소리와 해변의 물거품이 
좋았다. 건축학부에 다니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건물이 없는 풍경을 
가장 좋아했다. 바다를 보며 서너시간 물멍을 때리면 그보다 좋은 힐링이 
없었다. 영감이 마구마구 샘솟는 듯 했다.

탁트인 바다를 보다 서울로 돌아가 빽빽한 도시의 숲을 마주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2학년이어도 선호하는 설계 스타일은 꽤나 확고하다. 정형이 싫다. 우뚝 선 직육면체의 딱딱한 파사드보다 
자유롭게 흐르는 곡면이 좋다. 좋아하는 건축가를 꼽으라면 꼭 프랭크 게리를 언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건물에 자유를 주는 건축이 좋았다.




종강 후 디지털 디톡스를 하겠다는 목표에 걸맞게, 묵호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 볼 겨를 없이 알록달록 화사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독립 서점에서 
무작정 책을 사고 홀로 해변으로 향했다. 제목에 꽂혀서 고른 책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에세이였다.

아무도 없는 망상해변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백사장, 낮은 인구밀도, 화창한 날씨, 그리고 바다, 바다, 바다! 
한껏 낭만을 즐겨보겠다고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느긋하게 에세이를 읽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첫 대목이었다.





퀘렌시아(Querencia)

: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고 부른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단이었다. 지난 한 학기동안 나의 
퀘렌시아는 무엇이었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침대’ 였다. 아무래도 
잠과의 싸움은 마감을 달고사는 건축학도의 숙명인 탓이었다. 늘 할 일이
끝나면 꾸물꾸물 침대로 들어가 눈을 감곤 했다.

돌이켜보면 아키텐의 스터디도 나름의 퀘렌시아였다. 
운영진 업무(= 고봉밥 업무)에 쌓여 비명을 지르다가도, 스터디 날에 만나 
열심히 참여하는 키텐이들을 보면 괜히 뿌듯하고 의욕이 생겨났다.


32기 키텐이들 감사해요..

‘퀘렌시아’ 라고 해서 이름처럼 꼭 거창할 공간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공간에서, 오직 나만을 온전히 돌볼 수 있다면 
어디든 퀘렌시아가 될 수 있었다. 장소가 될 수도, 혹은 의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은 그날 오직 나만의 퀘렌시아였다.
나는 이 기억으로 다음 한 학기를 보내고, 겨울이 되면 새로운 
나의 퀘렌시아를 찾으러 또 다시 떠날 예정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스스로의 퀘렌시아를 찾길 바라며!




글쓴이_이지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