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이스 K 소피 폰 헬러만의 전시
드로잉에 대하여
어릴 적부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풍경과 건물, 그 속의 사람들을
담아낸 고화질의 사진들은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게 해줬다. 당시의 광경을 그대로 담은 것이 기억을 가장 정확하게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건축학과에 들어와서 시작하게 된 드로잉은 애정이 가지 않았다. 공간을
아무리 정밀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사진보다 섬세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첫 과제 때 사진 위에 얹어 그린 드로잉은 유독 볼품 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펜과 멀어지던 어느 날, 사진과 드로잉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한 건축가의 드로잉 전시에서였다. 사진은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구름의 모양부터 사람의 귀걸이까지 모든 스케일의 요소를 담아낸다. 반면, 드로잉은 순간의 생각을 그려낸다. 나의 시선이 꽂힌 것들을 중심으로 개성이 담긴 선들이 그려지고,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내 생각 속에 있다면
드로잉은 담아낼 수 있다.
LG 아트센터의 곡선과 직선선으로 가득했던 마곡
5월의 드로잉키텐이 방문한 곳은 마곡이었다. 스케치의 목적으로 바라본
마곡은, 곡선과 직선이 가득 교차하는 도시였다. 각양각색의 파사드로
감싸진 보도를 거닐며, 우리는 5곳의 공간을 마주했다.
[스페이스 K] 호와 아치가 가진 곡선을 보았다. 전시중인 작품과 어우러져
'곡선'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았다. [LG 아트센터] 곡선과 직선의 조화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곡선'이 가득한 벽과 그것을 관통하는 '직선'의 기둥이
대비되면서도 조화로웠다.

서울식물원의 식물을 닮은 선
[서울식물원] '곡선과 직선'의 유기적인 연결과 어우러지는 식재를 보았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선들을 담아낸 디자인이라고 느꼈다. [코오롱타워]
외부를 두르고 있는 '곡선' 파사드와 내부를 채운 '직선' 파사드를 보았다.
밖과 안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공간이었다. [삼진제약] '직선' 그리드로
잘린 파사드가 '곡선'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일정한 패턴의 곡선이 주는
편안함을 알 수 있었다. 드로잉키텐과 함께 한 마곡은 그리고 싶은 것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남았다.

답사 멤버들이 담은 드로잉
휙휙 펼쳤던 스케치북
마곡에서의 공간들은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 찼지만, 함께 한 사람들이
드로잉키텐이었던 것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공간을 거닐다가 문득 멈춰선 채로, 주섬주섬 스케치북을 꺼내 선을 긋기 시작하던 드로잉키텐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이 모임에 빠져들게 했다. 한참을 그린
후에, 서로의 드로잉을 구경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 다른 매력을 찾아냈고, 이를 공유하는 것은 내가
못 봤던 공간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공간과 공간을 오가면서도,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직접 그린 선들과 그때 나눈 이야기들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공간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방부제가 되었다. 과제와 설계를 위해 다양한 드로잉을 남겨왔지만, 제대로 된 드로잉은 이제서야 해 본 느낌이었다.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은 예술과 창작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이는 건축에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뭘 만들고 싶은 건데?” 설계가 시작됨과 동시에 떠오르는 이 질문은 마감이 다 되도록 반복된다. 머릿속에는 답변들이 가득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정리해서 설득하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드로잉일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컨셉, 건축물의 형태, 이용하는 동선 등
많은 요소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드로잉이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는 선이 아닌, 내 생각속의 형태를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드로잉을 하고 있다. 드로잉키텐에 들어왔을 때,
스케치북의 주제를 ‘시그니처’로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가 찾아낸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을 내가 느낀대로 옮겨 그리고 싶었다. 내 이야기가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드로잉키텐에는 멤버 수만큼 다양한 주제가 있고, 그만큼의
목표들이 있다.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주제로 무엇을 그려내고 싶은지
물으며, 글을 마친다.
스페이스 K 소피 폰 헬러만의 전시
드로잉에 대하여
어릴 적부터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풍경과 건물, 그 속의 사람들을 담아낸 고화질의 사진들은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게 해줬다. 당시의 광경을 그대로 담은 것이 기억을 가장 정확하게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건축학과에 들어와서 시작하게 된 드로잉은 애정이 가지 않았다. 공간을 아무리 정밀하게 묘사한다고 해도, 사진보다 섬세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첫 과제 때 사진 위에 얹어 그린 드로잉은 유독 볼품 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펜과 멀어지던 어느 날, 사진과 드로잉의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한 건축가의 드로잉 전시에서였다. 사진은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한다. 구름의 모양부터 사람의 귀걸이까지 모든 스케일의 요소를 담아낸다. 반면, 드로잉은 순간의 생각을 그려낸다. 나의 시선이 꽂힌 것들을 중심으로 개성이 담긴 선들이 그려지고,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내 생각 속에 있다면 드로잉은 담아낼 수 있다.
선으로 가득했던 마곡
5월의 드로잉키텐이 방문한 곳은 마곡이었다. 스케치의 목적으로 바라본 마곡은, 곡선과 직선이 가득 교차하는 도시였다. 각양각색의 파사드로 감싸진 보도를 거닐며, 우리는 5곳의 공간을 마주했다.
[스페이스 K] 호와 아치가 가진 곡선을 보았다. 전시중인 작품과 어우러져 '곡선'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았다. [LG 아트센터] 곡선과 직선의 조화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곡선'이 가득한 벽과 그것을 관통하는 '직선'의 기둥이 대비되면서도 조화로웠다.
서울식물원의 식물을 닮은 선
[서울식물원] '곡선과 직선'의 유기적인 연결과 어우러지는 식재를 보았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선들을 담아낸 디자인이라고 느꼈다. [코오롱타워] 외부를 두르고 있는 '곡선' 파사드와 내부를 채운 '직선' 파사드를 보았다. 밖과 안의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공간이었다. [삼진제약] '직선' 그리드로 잘린 파사드가 '곡선'으로 휘날리고 있었다. 일정한 패턴의 곡선이 주는 편안함을 알 수 있었다. 드로잉키텐과 함께 한 마곡은 그리고 싶은 것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남았다.
답사 멤버들이 담은 드로잉
휙휙 펼쳤던 스케치북
마곡에서의 공간들은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 찼지만, 함께 한 사람들이 드로잉키텐이었던 것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공간을 거닐다가 문득 멈춰선 채로, 주섬주섬 스케치북을 꺼내 선을 긋기 시작하던 드로잉키텐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이 모임에 빠져들게 했다. 한참을 그린 후에, 서로의 드로잉을 구경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도 각자 다른 매력을 찾아냈고, 이를 공유하는 것은 내가 못 봤던 공간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드로잉키텐
공간과 공간을 오가면서도,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멈추지 않았다. 직접 그린 선들과 그때 나눈 이야기들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공간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방부제가 되었다. 과제와 설계를 위해 다양한 드로잉을 남겨왔지만, 제대로 된 드로잉은 이제서야 해 본 느낌이었다.
추구하는 드로잉
이렇게 드로잉에 빠진 나는, 사실 드로잉실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선을 올곧게 긋는 실력이 아니라, 내 생각을 얼마나 잘 따라 그리는지에 대한 실력이다. 드로잉의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자면, 감상과 표현일 것이다.
감상의 단계는 머릿속에 그리는 과정이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드로잉의 초안이라고 할 수 있다. 표현의 단계는, 그 초안을 종이에 잘 옮겨 그리는 단계이다.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종이에 옮겨내는 것. 그 표현의 단계가 항상 어렵게 느껴지고, 이것이 앞서 드로잉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다고 한 이유이다.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은 예술과 창작에서 중요한 과정이다. 이는 건축에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뭘 만들고 싶은 건데?” 설계가 시작됨과 동시에 떠오르는 이 질문은 마감이 다 되도록 반복된다. 머릿속에는 답변들이 가득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정리해서 설득하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드로잉일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컨셉, 건축물의 형태, 이용하는 동선 등 많은 요소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드로잉이다.
그래서 나는, 눈에 보이는 선이 아닌, 내 생각속의 형태를 그대로 옮겨 그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드로잉을 하고 있다. 드로잉키텐에 들어왔을 때, 스케치북의 주제를 ‘시그니처’로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내가 찾아낸 공간의 가장 큰 매력을 내가 느낀대로 옮겨 그리고 싶었다. 내 이야기가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드로잉키텐에는 멤버 수만큼 다양한 주제가 있고, 그만큼의 목표들이 있다.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떤 주제로 무엇을 그려내고 싶은지 물으며, 글을 마친다.
엮은이_홍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