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
영화 테넷에서.
고등학교 1학년, 내 의지로 처음 관람한 전시는 더현대에서 열린
“Magic Shot”였다. 호기롭게 전시를 마주했지만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친구에게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같은
질문을 계속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친구가 한마디 해줬다.
“작품을 너무 심각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하려 하지 마.
그냥 보고, 느끼고, 너만의 방식으로 생각해봐.”
그 말이 당시의 나에게는 꽤나 인상 깊었다.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하다. 만약 전시에서 ‘어렵다’는 생각만 남았더라면
전시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의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조금씩이나마 전시를 작가의 언어로만 해석하려던 시선을
내려놓고 나만의 언어로 느끼며 전시 관람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이 있었지만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글을 빌려서 내 첫 전시 경험과 미래를 바꿔준 “이세중”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3,4월 동안 다닌 전시회
지금도 기회가 되면 최대한 많은 전시를 보러 다니려 한다.
많은 전시를 보았지만 여전히 해설을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들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전시를 내 언어로 해석하고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스로 느낀 것을 작가의 언어와 비교해 보는 과정도 가진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작가의 의도가 들어맞으면 그것만큼 희열감을 느끼는 상황도 없다.
가끔은 처음 보는 관람객에게 말을 걸고 서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감상과 이해들이 존재하며 결합되고 새롭게 생성되는 전시회라는 장소는 언제나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아키텐과 출사키텐
고등학교 시절, 주변에는 건축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갈망했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 하고 싶었던 것은 건축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활동하게 된 "아키텐"은 기대보다 훨씬 좋은 동아리었다. 스터디에서 서로의 생각을 편하게 나누고 다양한 시선을 접하는 것도 정말 좋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또 그 생각들이 함께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이 참 인상 깊었다.
그러던 중 출사, 전시, 답사를 주제로 활동하는 소모임 출사키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 치의 고민 없이 신청했다.

전시를 보며
출사키텐의 첫 활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관람이었고, 그 중에서도 나는 이강소 작가의 ‘풍래수면시’ 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작품을 하나하나 나만의 언어로 느끼며 많은 질문들을 떠올렸다. 그 중 나의 언어로 해석한 작품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3개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순간 이동할 때 나오는 초록색 불빛, 잘못 주문을 외워 도착한
어두운 골목 녹턴 앨리,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 그 작품들의 색과
배치에서 연상되었다. 왼쪽의 초록빛 작품은 순간 이동 장치 같았고, 그 옆의 검은 작품은 녹턴 앨리에 도착한 해리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작품은
마치 두 세계를 구분 지어 그려둔 것 같았다.

작품 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자체도 나에게는 하나의 전시였다.
꼭 전시를 갤러리에서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물, 거리, 자연
심지어는 웹사이트까지 누군가에게는 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생기고,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건 곧 전시라고 느낀다.
위의 사진과 같이 미술관의 다양한 재료와 재료들의 물성, 커다란 창문
너머로 작품처럼 보이는 한옥과 중정에서 현대, 근대, 중세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 나는 이것을 전시라 느꼈다.

다양한 감상과 이해 그리고 확장
다른 키텐이들의 전시 감상 방식도 정말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물성에,
어떤 사람은 질감과 색채에 집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같은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 또 다른 시선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물성에 집중해서 본다는 분의 말을 듣고, 한 작품을 보았다. 재료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그 자체의 물성 그대로 처지는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떠받치고 있는 판은 오히려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작품과 받침 사이의 대비를 통해 작품 자체가 더 강조되도록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내 생각에
접목시켜보며 시선을 확장시키는 과정은 너무나도 흥미롭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감상과 생각을 듣는 것만큼 시야를 넓혀주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생각과 감상이 생성되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전시회다.
이것이 내가 전시 관람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
영화 테넷에서.
고등학교 1학년, 내 의지로 처음 관람한 전시는 더현대에서 열린 “Magic Shot”였다. 호기롭게 전시를 마주했지만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친구에게 이게 무슨 의미일까?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걸까? 같은 질문을 계속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친구가 한마디 해줬다.
“작품을 너무 심각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하려 하지 마. 그냥 보고, 느끼고, 너만의 방식으로 생각해봐.”
그 말이 당시의 나에게는 꽤나 인상 깊었다.
뭐든 첫 경험이 중요하다. 만약 전시에서 ‘어렵다’는 생각만 남았더라면 전시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의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조금씩이나마 전시를 작가의 언어로만 해석하려던 시선을 내려놓고 나만의 언어로 느끼며 전시 관람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이 있었지만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 글을 빌려서 내 첫 전시 경험과 미래를 바꿔준 “이세중”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3,4월 동안 다닌 전시회
지금도 기회가 되면 최대한 많은 전시를 보러 다니려 한다. 많은 전시를 보았지만 여전히 해설을 보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전시들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전시를 내 언어로 해석하고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스스로 느낀 것을 작가의 언어와 비교해 보는 과정도 가진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작가의 의도가 들어맞으면 그것만큼 희열감을 느끼는 상황도 없다. 가끔은 처음 보는 관람객에게 말을 걸고 서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감상과 이해들이 존재하며 결합되고 새롭게 생성되는 전시회라는 장소는 언제나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아키텐과 출사키텐
고등학교 시절, 주변에는 건축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자유롭게 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갈망했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 하고 싶었던 것은 건축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활동하게 된 "아키텐"은 기대보다 훨씬 좋은 동아리었다. 스터디에서 서로의 생각을 편하게 나누고 다양한 시선을 접하는 것도 정말 좋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또 그 생각들이 함께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이 참 인상 깊었다.
그러던 중 출사, 전시, 답사를 주제로 활동하는 소모임 출사키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한 치의 고민 없이 신청했다.
전시를 보며
출사키텐의 첫 활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관람이었고, 그 중에서도 나는 이강소 작가의 ‘풍래수면시’ 에 가장 오래 머물렀다. 작품을 하나하나 나만의 언어로 느끼며 많은 질문들을 떠올렸다. 그 중 나의 언어로 해석한 작품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3개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순간 이동할 때 나오는 초록색 불빛, 잘못 주문을 외워 도착한 어두운 골목 녹턴 앨리,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 그 작품들의 색과 배치에서 연상되었다. 왼쪽의 초록빛 작품은 순간 이동 장치 같았고, 그 옆의 검은 작품은 녹턴 앨리에 도착한 해리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작품은 마치 두 세계를 구분 지어 그려둔 것 같았다.
작품 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 자체도 나에게는 하나의 전시였다. 꼭 전시를 갤러리에서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건물, 거리, 자연 심지어는 웹사이트까지 누군가에게는 전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생기고,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건 곧 전시라고 느낀다.
위의 사진과 같이 미술관의 다양한 재료와 재료들의 물성, 커다란 창문 너머로 작품처럼 보이는 한옥과 중정에서 현대, 근대, 중세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 나는 이것을 전시라 느꼈다.
다양한 감상과 이해 그리고 확장
다른 키텐이들의 전시 감상 방식도 정말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물성에, 어떤 사람은 질감과 색채에 집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같은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 또 다른 시선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물성에 집중해서 본다는 분의 말을 듣고, 한 작품을 보았다. 재료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그 자체의 물성 그대로 처지는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떠받치고 있는 판은 오히려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작품과 받침 사이의 대비를 통해 작품 자체가 더 강조되도록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내 생각에 접목시켜보며 시선을 확장시키는 과정은 너무나도 흥미롭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의 감상과 생각을 듣는 것만큼 시야를 넓혀주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생각과 감상이 생성되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전시회다. 이것이 내가 전시 관람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엮은이_이하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