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식(食)과 주(住)는 생존의 영역이었다.
동굴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에게 미각은 그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식용 판단 도구일 뿐이다.
생존에서 출발하여
표현과 경험의 수단으로 발전한 미각과 공간을,
개인에 따라 변화하는 ‘레시피’적 관점으로 탐구한다.
우리의 의식주에는 레시피가 존재한다.
본능이 축적한 비법이 현재를 생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탄생부터 조리되고 있는 이 세상은,
복잡한 비율로 고유의 맛을 뿜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 우리는, 건축에 어떤 ‘맛’을 첨가해야 하는가?
미각: Space-Recipe
안현근 김광일 박병호 성연진 이지안 Zakharenko Kristina
전시 시퀀스
[9] 긴장, 원시(原始)
[10] 가계도, 돌 돈까스, 몽타주
[11] 환상연회, 해시계, 프리즘
[9]
긴장의 선
검은 실들을 교차 및 고정, 실에 꼬마 전구와 방울 매달기
2,440mm × 1,200mm
원시 (原始)
캔버스에 콜라주. 그림, 글자를 활용한 아트 페이퍼 위에 아크릴 및 모델링 페이스트 레이어링
7,27mm × 5,30mm
인류가 처음 경험한 맛, 즉 고유의 감각은 ‘위험’이다. 알 수 없는 생명체들과 환경에서 '위험'과 '안전'을 구분해 내기 위하여, 인간은 가장 먼저 자신의 신체 감각을 사용했다. 과거의 감각이 현재의 물리적 공간과 어떻게 결합하여 이루어지는지 고찰한다. <긴장의 선>은 과거 인류가 맛을 경험하기 전 느꼈던 '긴장'에 대해, 여러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치이다. 인간의 온몸에 곤두세워진 신경은 복잡하게 엮여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이다. 그중 미뢰(미각을 느끼는 감각 기관)의 위험 감지 능력은 뛰어나다. 조금의 변화에도 요동치는 신경의 짜임은 건축적으로 긴장감을 형성한다. 호모 에렉투스의 미각을 공간으로 은유하여, '건축에서의 맛'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원시(原始)>는 근원에서 시작된 상태로, 생존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각과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위험을 추상화한 작품이다. 오로지 생존적 레시피로서 특화된 미각과 건축은, 고독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늘 곤두서있는 예민함, 날카로움, 긴장감, 위험-안전만을 판단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양상을 흑백-콜라주로 표현하고자 한다. 관람객은 다양한 재료가 혼재된 콜라주를 통해, 혼돈과 그 사이의 고독함을 마주한다. 색 모래와 같은 입체적인 입자를 직접 손으로 만져, 따가움을 통하여 위험을 느끼고, 직관적인 문자를 통해 주제의 위협성을 인식한다.
[10]
가계도
쌓여진 플라스틱 용기 내 나무, 돌, 흙, 벽돌, 콘크리트 등의 미가공된 건축 자재들 배치
300mm X 300mm X 300mm
돌 돈까스
돌을 적당한 크기로 부수고 돈까스 모양으로 성형하여 기름에 튀긴 후 플레이팅
200mm X 200mm X 50mm
몽타주
다양한 색상의 포맥스와 아크릴을 결합
450mm x 450mm x 900mm
미각과 건축 모두 레시피적 과정을 통해 전승·분화·발전한다. 개인의 경험이 담긴 레시피는 전파되는 과정에서 사람 간 차이에 따라 변형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가 생겨난다. 건축 역시 다양한 재료의 활용과 건축가의 표현 방식에 의해 여러 양식으로 분화된다. <가계도>는 이 같은 다층적 소통과 창조 과정을 보여주어, 하나의 재료로도 무궁한 건축 양식이 가능함을 드러낸다. 요리와 건축이 경험과 재료의 만남으로 분화·발전하는 가능성도 드러난다.
미각과 건축은 생존에서 향유로 확장된다. 퓨전 요리나 파인 다이닝처럼 도전적 방식을 통해 미각은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를 건축에 접목해 독창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돌 돈까스>는 견고한 돌을 돈까스로 극단 변형해 건축 재료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재료 순환과 변형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이처럼 미각에서 비롯된 실험이 기존 설계를 넘어서며, 생존을 넘어서는 향유적 건축의 가능성을 넓힌다. 돌 돈까스는 한계를 넘어 건축의 의미를 제시한다.
음식은 부패한다. 혹은 발효한다. 변화하는 과정에서 음식은 더 작은 유기물들로 나누어지고, 단계마다 느낄 수 있는 미각은 달라진다. 이러한 미각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 과정을 건축에도 적용시킨다. <몽타주>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고층 건축물들을 재구성한다. 우선, 건축물을 기둥, 슬라브, 파사드와 같은 작은 요소들로 분해한다. 이어서 건축 요소의 표현 가능한 최소 단위인 점-선-면으로 추상화한다. 기존 건축물에서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감각을 제공하며 '미래 건축'에 대한 인식을 유도한다.
[11]
환상연회
원형 테이블 내 식기류 및 메인 오브제 '프리즘'
1,200mm x 1,200mm
해시계
CD 디스크를 반으로 절단 후, 벽에 해시계 모양으로 부착
1,000mm × 1,000mm
프리즘
다양한 색상의 반투명 아크릴 재단 후 결합,
오브제 안에 조명 배치
1,200mm x 1,200mm x 1,800mm
<환상연회>는 미래의 건축에 대해 예측해 보고, 관람객들로 하여금 전시에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장치이다. 우리는 미래 공간의 형태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살아온 우리 인간은, 미래 공간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상상하여 감지할 수 있다. 여기서 식탁은 환상과 현실의 매개체로 작동한다. 식탁에 직접 앉아 암시된 미래를 감지하고, 미래 건축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제공받는다.
건축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서 과거를 통해 현재로 왔고, 이제는 미래를 보고 있다. 생존을 위한 건축에서 점차 즐기는 건축이 되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과거 덕분에 현재가 있고, 현재 덕분에 미래가 있기에 모든 것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 <해시계>는, 이 연결을 각 시대의 건축 성격을 반영하는 해시계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각 시대의 '빛'이 한데 모이며 또 다른 맛, 또 다른 레시피가 나타난다.
<프리즘>은 하나의 광선을 수많은 색의 빛으로 분산시킨다. 건축에서도, 음식의 맛을 볼 때와 같이 창문, 벽, 보, 기둥을 하나씩 개별로 인식하는 것보다 전체로서의 공간을 경험할 때 '공간성'을 느낀다.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가지는 연관성을 피라미드의 세 가지의 면의 만남을 통해 표현한다. 프리즘이 반사시키는 빛은 물리적인 형태가 없지만, 온몸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은 미래 건축의 물리적인 형태를 모르더라도, 미래 건축의 '맛'을 어렴풋이 상상할 수 있다.